<눅12:15~21> / [영혼을 중심하는 사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말세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환경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는 고통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므로 육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하면 영혼이 힘을 얻고 육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중심하는 사람'은....
1. 욕심과 정욕대로만 사는 '이기주의'를 버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탐심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탐심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탐심은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도 자기를 위해 재물을 모으고 자기를 숭배한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을 받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는 자에게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실 것을 축복으로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2. '황금만능주의'를 버리는 사람입니다.
돈은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하는 우리 시대의 강력한 우상입니다. 본문의 부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창고를 짓고 곡식을 쌓아 놓는 일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무엇입니까? 일만 가지 악의 뿌리는 돈을 사랑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근심이 자기를 찔러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로 선한 일과 선한 사업을 행하며, 나누어 주고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쾌락주의'를 버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또 하나의 우상은 쾌락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가까이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반면에 육체는 즐겁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고 천국이 있기에 우리를 창조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므로 예배하는 경건의 능력을 소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 영혼을 중심하는 사람은 하늘 소망을 품고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땅에 많은 것을 쌓아두려고 했던 부자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영혼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걸국은 무엇입니까? '영혼의 구원'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께서 '그 영혼을 받아 주시는가' 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육신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영혼을 예수님께 의탁하는 간구를 드릴 수 있습니까? 평소에 영혼을 중심하는 삶을 산 사람만이 가능한 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반드시 죽음으로 무너집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하늘의 산 소망을 품고, 영혼을 중심하는 사람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