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예배 말씀 -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마 6:11)
- 이스라엘 악수법은 손목을 잡고 악수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손목을 놔도 하나님은 내 손목을 잡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잊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위로를 받으십시길 원합니다. 우리를 은혜의 자리, 승리의 자리, 감격의 자리로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 교회는 큰 가정이다. 그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 혼자 믿는 것 같지만, 옆에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큰 가정으로 서로를 이끌어 갈 때 아버지 앞으로 이끌어 가게 될 줄 믿습니다. 눅 23:28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서로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청년부가 세워지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제목입니다. 왜 우리에게 넉넉하게 허락하시지 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말하게끔 하셨습니까? 일용할 양식은 하루 먹으면 다음날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양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덮어놓고 읽을 때가 많습니다.(또는 성경에 집중해서 보지 않고 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결단의 자리 어떤 순종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여쭤봐야 합니다. 그 삶은 복된 삶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일용할 양식 속에는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질문 : 너의 삶은 누구의 것이냐!
- 세례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시길 원합니다'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보고 어떤 학자들은 백성들이 단체로 세례를 받았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주소서' 라는 고백이 거기에 담겨있었다고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홍해를 건넌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선데이 크리스천으로서 또는 나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다면, 나의 삶이 내 것인 마냥 산다면,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가득한 분은 그런 일용할 양식을 만나게 됩니다.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출 16:4-5은 만나를 거두는 규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만나고 싶다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도 그 냄새나고 썩어가는 만나처럼 됩니다. 내 힘, 내 능력, 내 지식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고백할 수 있는 청년들 되시길 바랍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는 힘도 아닌 능력도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고전 1:25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보다 뛰어나다고 합니다. 잠30:7-8은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고 오직 필요한 양식만 내게 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잠 30:9에 나오는데 곧 배불러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혹은 가난하여 도적질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할까 한다고 합니다. 부유해 지는 건 좋지만 그게 과해서 탈이 난다면 그게 복일까요? 물질이 있으면 좋지만 그걸 위해서 다른 걸 희생하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부해지는게 과연 좋은걸까요? 지식을 쌓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 쫓는다면 그것 역시 좋은 걸까요? 우리는 우리의 그릇에 맞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너무 배부르지도 않게하고 너무 배고프지도 않게 적당하게끔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학을 하든 취업을 하든 결혼을 앞두고 있든 그 일들 앞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는 지혜롭게 할 것 같은 것들이 잔뜩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홀려 쫓아가면 우리의 심령이 메말라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훈련시키십니다. 분명 가나안 부족민의 문화에 취해, 부에 취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삶이 고달프고 지칩니까? 힘듭니까? 이것은 영혼의 배꼽시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