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유한 사람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고,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억울하거나 감정이 상할 때에 분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노의 감정을 통해서 죄가 들어오고 마귀가 역사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용감한 사람인데, 바로 그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욥은 큰 환난을 만나 자녀, 물질, 건강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서 자기 뜻을 고집하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 속에 회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니느웨 성에 가서도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봐 마음이 불안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박넝쿨이 말라 버렸다고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며 불평하지 않습니까? 요나는 환경과 감정에 좌지우지 되는 믿음이었던 반면에 욥은 환경과 감정을 초월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온유한 믿음입니다.
2. 온유한 사람은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수의 칼을 가는 세상입니다. 누가 내게 피해를 주면 피해 받은 만큼 갚아주던지, 아니면 더 강도 높게 복수하고 보복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복수하고 보복하는 것은 순간의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범죄 하는 것이고, 결국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꿈의 사람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이 나를 인신매매해서 내가 애굽에 왔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 속에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복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형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형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앞서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온유의 마음입니다.
3.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는데, 그 복은 땅을 차지하는 복입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대제국을 통치하는 권세를 부여받게 됩니다. 엄청난 환난 속에도 입술로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한 욥은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 같은 사울왕을 죽이지 않고 용서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축복으로 말미암아 참된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끝없는 갈증과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만난 다윗은 자신의 인생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족하는 비결을 예수님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후사로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만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업은 주님의 마음을 품은 온유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해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이 모두 그들의 소유가 되고 마지막 날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한 자가 되셔서 땅을 차지하는 축복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하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