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전한 용서 ] (고후2:10-11)
용서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하나님께는 ‘회개’로, 사람들에게는 ‘용서’라는 법칙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보면, 죄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로서의 회개와 용서에 대한 부분이 나오지 않습니까?
◉ 용서의‘사전적 의미’와‘성경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용서란 “가해자가 나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용서를 하지 않으면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특히 용서를 하지 않으면 비난이 우리 속에 있으며, 결국은 싸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않은 상태를 “독을 품은 상태”로 묘사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독을 마시므로 영적 자살행위입니다. 용서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는 ‘빚’이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하면 마귀에게 진 것이요, 경제적 개념으로는 마귀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자유케 되려면 마귀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능력이 죄인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마귀에게 진 빚을 십자가의 보혈로 다 갚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용서하는 것을 “탕감”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탕감’은 큰 사람이 하는 것이요 부요한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큰 사람이 되고, 부요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타락한 옛사람은 ‘복수’를, 거듭난 새사람은 ‘용서’를 요구합니다. 선택은 내가 합니다. 그래서 용서는 선택입니다.
◉ 완전한 용서는 마음에 쓴 뿌리를 제거하여 마귀에게 속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해결하지 못한 분노를 “쓴 뿌리”라고 합니다. 쓴 뿌리나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란 ‘피해 의식’입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마귀를 초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피해의식이 찾아오면 마귀는 우리에게서 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틈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이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결론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에 실현됩니다.
완전한 용서의 모델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할 때에 하늘의 상이 크고,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원수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성경적으로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했다면 이제는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주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는 그래서 마귀에게 속지 않는 영적 승리의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