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망의 사람 ] (고후4:16-18)
육신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결국 사망의 구덩이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반면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생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래서 영의 생각을 품은 사람은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저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사는 소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1. 소망의 사람은 육체의 썩어짐에 ‘낙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사람은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똑같이 경험해야만 하는 관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 죽을 것처럼 살면서 죽음 이후의 심판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육체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육체가 병들고 썩어지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때를 위해 사는 사람은 썩어지는 육체보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영혼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게 됩니다. 육체는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후패하고 썩어지지만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 진정한 나인데, 이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날마다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십니다.
2. 소망의 사람은 세상에서의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품은 사람은 이 땅에서의 육체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땅에서는 인천시민, 부천시민이지만 하늘에서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는 이 땅에서 세상과 마귀가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을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늘의 영광을 받기 전에 먼저 이 땅에서의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 뒤에 부활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좇아갈 때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하늘의 영광을 바라봤던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3. 소망의 사람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보이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얼마나 죽을 때 허무합니까? 제한된 시간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결말이 달라집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곧 사라져 버리고 덧없는 물질에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소망의 사람은 하늘의 본향집을 찾아가는 ‘신령한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본향집을 찾아가는 신령한 나그네들입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은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원한 본향집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령한 나그네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의 때를 위하여 오늘을 믿음으로 살고, 사명으로 충성하여 하늘에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