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예배 말씀 - 우리는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마 18:21-35)
- 용서라는 말은 참 흔하지만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하지만 용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알지 못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그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잊으라고 합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많이들 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상처 받았던 기억이 희미해 질 수는 있지만, 분명 어딘가에 상처는 남아 있습니다. 그 상처를 누군가 건드린다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내게 됩니다. 우리가 왜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우리의 힘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 용서의 필요성을 몰라서 안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용서할 수 ㅇ벗다고 생각함에도 스스로 용서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용서해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마음이 추스러지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용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렘 17:9은 인간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우리의 무력함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실 것입니다.
2. 용서는 우리를 위한 축복입니다.
- 우리가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은 당시에는 아플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덤덤해집니다. 우리는 그 무덤덤해지는 나를 보며 그냥 용서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용서하지 못하는 상처가 우리의 성격을 점점 왜곡되게 만듭니다. 때론 그 상처 때문에 이유없이 짜증과 분노가 휩싸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탕감받은 동관도 자신에게 빚진 자를 만나자 분노에 휩싸입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어렵고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용서하시라는 것은 용서를 통해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임한 사람은 용서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라고 하셨다면, 그것은 축복을 위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 성경에서 '7'은 완전한 숫자를 상징하는데, 이 사실을 바탕으로 본문의 "일곱번씩 일흔번 용서하라"는 말은 곧 "무조건 용서하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오늘 본문에나오는 용서해주시는 왕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마음입니다. 십자가는 본래 죄인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은 세상의 어떤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쏟아내시는 분노의 잔을 전부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영혼의 단절까지 겪으셨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만큼 참혹하고 깊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도 참혹하고 비참하고 깊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린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는 연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바쁜 일상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평화를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내가 용서받을 십자가 앞에 서서 용서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