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23
[ 복 있을진저 ]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7번이나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라고 말입니다.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왜 예수님께서 화가 있다고 책망하셨습니까? 오늘 이들의 모습을 통해 '복 있을진저'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 먼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말과 삶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위해 기도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주의자들이었기에 말과 삶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아닙니까?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과 삶이 다른 곧 외식하는 자들을 정확히 구별하십니다. 그렇다면 외식하는 화 있을진저의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사는 복 있을진저의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겸손한 자! 복 있을진저! VS 교만한 자! 화 있을진저!
예수님께서 보실 때, 복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화 있을진저에 해당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기의 의가 강하기 때문에 교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티만 보려고 한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 보시기에 복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낮추기에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 진실한 자! 복 있을진저! VS 거짓된 자! 화 있을진저!
하나님께서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겉과 속이 같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외식하는 자들은 겉만 깨끗하고 속은 더러운 사람들입니다.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가 있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결론] 은혜와 겸손은 정비례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의에 도취해 있을 때는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자랑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는 일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이 주님 앞에 큰 죄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임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록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겸손해질수록 은혜를 많이 받게 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의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자기 의, 외식, 비난과 정죄, 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함으로 더 겸손해져서, 하나님께 복 있는 사람으로 칭찬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