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삼상22:1~4
[아둘람 공동체]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국경을 넘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칩니다. 그런데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봅니다. 그 순간 다윗은 침을 흘리며 미친 체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34편에서, 환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다윗은 블레셋 땅 가드를 떠나서 아둘람 굴로 갑니다. 그리고 이 굴에서 다윗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과 아둘람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아둘람 공동체’는….
1.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인정하는 공동체입니다.
아둘람은 ‘피난처’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 중 하나입니다. 가드와 헤브론 사이에 위치했으며, 사울 왕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의 형제와 아버지도 다윗에게 오게 됩니다. 이는 진정한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피한 것입니다.
다윗도 매순간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임을 수없이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자신의 힘의 반석과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역시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을 때,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만나고, 다윗처럼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문제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온 공동체입니다.
다윗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등 아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후에 다윗 왕국을 이루게 됩니다. 교회에 적용해 보면, 교회는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는 영적 병원입니다. 교회에는 영육간에 아픔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목마르거나 돈이 없어도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육간에 아픈 사람들이 찾아와서 상처를 치유받고, 질병을 치료받고,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용서받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와 아픔과 상처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해결 받고, 치유 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아둘람 공동체는 어두운 동굴을 지성소로 변화시킨 찬양과 예배의 공동체입니다.
빛도 없이 어두운 동굴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지성소로 변화됩니다. 문제와 아픔과 상처가 있었던 그들은 세상을 한탄하거나 눈물을 쏟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루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마음을 모아 예배하면서 아둘람 동굴을 빛이 가득한 지성소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도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날마다 송축하며, 영원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문제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어두운 동굴같은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어져서 찬양과 예배의 사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