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11]
[주님만 따라가는 사람]
우리는 주님 안에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만족하며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밖에 있을 때에는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 땅으로 내려가는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그녀의 인생은 기쁨(나오미)에서 괴로움(마라)이 가득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주님 안의 베들레헴에서 주님 밖의 모압 땅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좇아갔기 때문입니다. 요나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니느웨로 가는 배 대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풍랑을 만나고, 제비에 뽑혀서 결국 바다 위에 던져집니다. 큰 물고기의 뱃 속에서 3일 동안 음부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좇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행복과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명을 버리고 다시 물고기 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었습니까?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했고, 주님께서 두 번이나 나타나셨는데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사명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압 여인 룻처럼 주님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는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 긴 세월이 걸렸지만,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갔습니다. 2차 선교 여행 때,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허락하지 않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냐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에게는 영적 분별력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명을 잃어버리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돌아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즉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즉시 반응하며 순종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결론]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 있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성령님께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생선도 드십니다. 또한 닫혀있는 문을 통과해서 들어오시기도 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영적인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가 부활할 때 입게 될 신령한 몸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여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십시오! 그래서 주님만 따라가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