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갈5:22~23
[충성]
사도 바울은 믿음의 제자요,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사명의 비전을 권면합니다. 그것은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제자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충성된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얼음냉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제자는 사도 바울로부터 디모데로, 디모데로부터 충성된 사람들에게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면 또한 제자를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 ‘충성’의 열매를 맺으려면 부르심의 감격(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충성해야 합니다.
마20장에, 포도원 주인은 새벽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 품꾼을 부릅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부름 받은 품꾼만 자신을 불러준 주인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주인은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삯을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시간보다 일하는 자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인내하며 부지런한 교회였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책망받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르심의 감격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감격과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 속에 직분과 사명에 충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충성’의 열매를 맺으려면 작은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양을 쳤던 목동 다윗을 작은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종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르는 왕이 됩니다. 곰이나 사자가 양 새끼를 움켜가면 끝까지 쫓아가서 입을 찢고 구해오는 다윗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섯 달란트나 한 달란트는 다 작은 것입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든 것이 작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최고가 되기 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기만 하면 질그릇일지라도 귀히 쓰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 아닙니까?
[결론] ‘충성’의 열매를 맺으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실하게 끝까지 헌신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하지만 상급은 일한대로, 충성한 대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항상, 더욱, 힘써야 합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만족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명만큼은 만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달려갔습니다. 그는 의의 면류관을 바라봤기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흘린 눈물, 땀, 시간, 희생, 수고, 열매는 썩지 않고 남게 됩니다. 우리는 사명의 달란트를 가지고 가서 생명의 면류관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사람이 충성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충성된 일꾼이 되셔서 부르심에 감격하십시오! 더욱 주님의 일에 항상, 더욱, 힘써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일꾼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