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0:14~16> /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삶]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며,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을 만나서 경험하여 하나님을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은혜에 반응하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삶은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입니다.
우리는 항상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품삯을 나누어 주실 때의 기준은 원망과 감사입니다. 일하는 자의 중심를 보신 것입니다. 오후 5시에 부름을 받아서 1시간 일한 사람들의 중심은 어떻습니까?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한 감격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영적 경쟁력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격이라면, 원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지 못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아닙니까?
2.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삶은 선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먼저 온 품꾼들의 마음에는 원망과 불평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있는 사람은 악해집니다. 반면에 감사는 우리의 영혼이 아름다워집니다. 문제는 말이 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죄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노를 그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원망하며 불평하게 되지만,겸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며 감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결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삶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삯을 주십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부지런하고 인내하는 교회였지만,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까? 처음 사랑은 부르심에 대한 감격이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입니다. 포도원 품꾼들의 먼저된 자들에게 없었던 것도 처음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1시간을 일했지만 부르심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일해서 똑같이 1데나리온을 받는 것, 그것도 먼저 받는 것입니다. 먼저된 자들은 약속한 것을 받았지만, 1시간 일한 품꾼들과 비교했기 때문에 주인을 오해하며 원망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1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사람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삶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