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 ](시편 42:5)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인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는 영의 죽음입니다. 죄로 죽은 내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영이 살아있는 사람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적 그리스도의 영인 마귀를 따라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이 살아났다면 영의 사람으로 영혼 중심의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핵심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1. 하니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대적들에게 쫓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신을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시냇물은 하나님의 도우심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풍성한 은혜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진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생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타는 듯한 목마름과 갈증을 해결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사랑과 축복을 사모하며 갈망하는 사람에게 먼저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사모함과 갈망은 클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2.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자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찬양합니다. 내가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고난 뒤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평안과 소망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시선이 중요합니다. 환경과 상황을 바라볼수록 내 영혼을 힘을 잃고 죽어갑니다. 반면에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볼수록 내 영혼은 힘을 얻고 살아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낙심과 불안을 극복하는 비결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고 갈망하며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소망을 가진 사람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소망을 품었기 때문에 더욱 주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환난을 소망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주님을 찬양하니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항상 찬양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낙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평생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양은 하늘 문을 여는 기도요, 예배입니다. 다윗처럼 일평생, 사도 바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을 통해 하늘의 문이 열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인생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