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3:18~19> / [겨자씨]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좁쌀만한 작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커다란 나무로 자라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가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1. 겨자씨처럼 '작은 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자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하셨다는 겸손함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을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하시는 것은 겸손한 사람으로 훈련시키시는 것이 아니십니까? 그렇게 훈련받았던 사람이 요셉이었고, 다윗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 속에서 부활의 주님만 의지합니다. 그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어부 출신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바리새인들이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잘나고 가문좋은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으셨을까요? 자신이 작고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경험할 때,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윗은 어떻게 거인 장수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는 소년이었지만,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고, 지금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동원되는 믿음입니다.
2.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도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람은 한계에 부딪히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동원됩니다. 막9장에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청을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시기 전에, 먼저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동원되는데, 그 믿음은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 만해도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 한 알 만한 작은 씨앗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열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보배이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질그릇 같은 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작은 겨자씨 같은 나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지켜주시고, 성장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한 사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