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7:12~14> / [나의 하나님 ]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하신 분이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임받았습니다. 엘리야는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움을 받았습니다. 영적 스승이었던 엘리야를 사역의 장소마다 끝까지 쫓아다니며, 갑절이나 되는 성령의 역사를 사모했던 엘리사는 결국 그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위대한 선지자로 쓰임받게 됩니다. 모세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하나님'은....
1. 하늘의 영원한 산 소망이십니다.
이 세상의 꿈과 소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영원합니다. 다윗은 일찍부터 자신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평생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죽음은 모든 소망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늘의 영원한 산 소망을 품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받는 하늘의 영원한 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망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버리는 시람들은 다 수치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2.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이 세상의 것들의 특징은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흙에 기록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바닷가의 모래 사장에, 글을 쓰면 파도에 지워지듯이 흙에 기록된 것은 영원히 기억되지 않습니다. 금방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늘에 기록됩니다.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면 영원히 남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영원한 천국 집에서 영생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지옥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까이하여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 나의 하나님은 나를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나의 찬송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하늘의 영원한 산 소망이십니다. 또한 나의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시기에 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합니다. 그러면 찬송과 예배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내 마음의 상처, 내 육체의 질병까지도 고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나의 찬송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자신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일평생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찬송도 하늘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고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의 하나님은 하늘의 영원한 산 소망이십니다. 또한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기쁘지 않아도, 좋은 일이 없어도,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나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그래서 나를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단의 기도]
1. 썩어질 세상 것들에 대한 소망을 내려놓고 영원한 산 소망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아멘!)
2. 갈증나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게 하소서!(아멘!)
3. 나의 찬송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