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13>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원자,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연과 재수는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1.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삶의 1순위가 '하나님'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존경하며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악하고 타락했던 시대에,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만 바라보며 천국으로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면 멸망하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비바람이 앞 길을 막아도,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주님을 사랑하기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흠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처럼 주님의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깨달은 만큼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면 사람은 변화됩니다. 그래서 격정적이며 잔인한 성격의 사도 요한이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이 아닙니까?
[결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이 노부부의 문제는 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노부부에게 애를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늘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늘 문이 열리고 기도는 응답됩니다. 아들을 주시며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이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일평생 기도한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사망에서, 눈물에서, 넘어짐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확신하며, 일평생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사십시오! 주님을 사랑하기에 순종하십시오! 일평생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래서 생명의 근원되시는 주님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