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4:13~17> / [기업 무를 자]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룻기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기업 무를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구속(속량)한다'는 말입니다. 구속(속량)의 정확한 뜻은 "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케 한다"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구야에서 기업을 무른다고 할 때, 그 대상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땅'을 속량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노예'를 속량해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과부'를 속량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업 무를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기업 무를 자는 세 가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 무를 자는....
1. '가까운 친족'이어야 합니다.
보아스가 룻의 친족인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친족이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2. '유력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유력자란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부채를 갚는 속전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유력자가 바로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3. '자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구속자는 자원해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순서상으로 보아스보다 앞선 친족이 있었지만, 룻의 생애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원하여 책임을 집니다. 룻의 짐을 대신 담당합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바로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억지로 지신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지신 선한 목자가 아니십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결론] 기업 무를 자이신 예수님의 속량으로 '자유함'과 '회복'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첫째, 속량의 결과로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모압 여인 룻은 가난한 이방여인이었지만, 보아스는 이 여인을 자유케 합니다. 예수님도 죄와 사망에 갇혀있던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둘째, 속량의 결과로 '신분'이 변화됩니다. 보아스의 아내가 된 룻은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메시아의 족보에 오르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셋째, 속량의 결과로 '기업'을 잇게 됩니다. 보아스가 베풀어 준 은혜로 룻의 남편인 말론의 기업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남으로 인생이 역전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셨으며, 하늘의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하늘의 기업을 잇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단의 기도]
1.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죄 없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게 하소서!(아멘!)
2. 자원함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영과 혼과 몸이 치유되고 자유하게 하소서! (아멘!)
3.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참된 자유와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고 지키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