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8:33~35> /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안된다고 만류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는 것이 내게 좋은 것이며,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이 내게도 옳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1.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예수님을 위한다고 한 말이 오히려 사단의 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은 육신의 일입니다. 세상 근심과 육신의 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 결말은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않습니까? 세상과 벗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 영혼에 축복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2. 하늘 소망을 품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수 없고, 사명의 십자가도 질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썩을 양식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합니다. 주님을 위해 사명을 감당합니다.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이 주인되시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부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을 기뻐했습니다. 하늘의 소망,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나를 부인하며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을 주목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것을 버려야 주님을 좇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는 신령한 포기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다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포기입니다. 주님을 위해 신령한 포기를 하면 나를 위한 100배의 축복과 영생의 복이 주어진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과 복음을 위한 신령한 포기는 곧 나를 위한 신령한 포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신령한 투자를 하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우선순위를 구분하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늘 소망을 품고 자기 십자가를 지십시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을 주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