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0:1~5> /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경건한 사람]
경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이 땅을 살면서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은 이 땅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있습니다. 경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명입니다.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백부장 고넬료도 이방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경건한 사람은....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분'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사람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 뿐 아니라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경건은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는 사람은 말로만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죄에 대한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그 자리에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2.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며, 둘째도 첫 번째 계명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지극히 연약한 자를 섬긴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한 것이 아닙니까? 반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연약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섬겨주는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생명의 통로가 되어야겠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경건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경건의 기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경건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넬료가 경건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내 '앞'에 계시다! 곧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가 어떨 때에 죄로 쓰러집니까?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을 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잡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평생 기도하며, 항상 기도하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경건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십시오!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경건한 사람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