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갈 2:20)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세상의 가치들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세상 것을 버리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버려야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옛 사람이 죽은 사람입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이 됩니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 속에 담겨진 믿음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은 내가 먼저 섬기고 나누고 주는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첫 째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섬기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큰 사람이지만, 성경은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섬기러 오셨듯이 우리도 섬기는 자가 될 때, 천국에서 큰 자가 되지 않습니까? 세상은 대접을 받은 만큼 대접하라고 알려주지만, 성경은 대접을 받고 싶은 만큼 '먼저' 대접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주라! 먼저 대접하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되도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먼저 대접하고 먼저 주는 자에게 놀라우신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주고 섬기고 베푼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칭찬하지 않으셨습니까?
2.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심은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비판 받는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나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판단의 권한은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종을 비판합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의 하인을 비판합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과 용서의 삶을 통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려야 합니다. 또한 가정과 공동체도 하나되게 합니다.
결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잘난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낮아집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반드시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을 사용하셨으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려면 반드시 내가 죽고 '주님'께서 내 안에 사셔야 합니다. 주님이 주인되시고 주님이 살아 역사하셔야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내 안에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십니까? 내가 먼저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서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판단하거나 비판하기보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오직 하나님만 인정하고 높이는 겸손한 믿음으로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의 기도]
1. 내가 먼저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서 생명과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아멘!)
2. 비판, 비난,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아멘!)
3.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겸손히 하나님만 인정하고 높이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