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6:39 / <'그러나'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는 앞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이는 접속 부사입니다. 앞의 말보다 '그러나' 뒤의 말이 중요합니다. 열 명의 가나안 정탐꾼이 모세에게 보고합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지만,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다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부정적인 보고였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잡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두 배 가득 많은 물고기를 잡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그러나' 뒤에 자기의 생각이 있으므로 백 프로 불순종합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그러나' 뒤에 주님의 말씀, 진리가 있으므로 순종합니다.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은 영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매순간 '그러나' 뒤에 무엇이 놓이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본심도 '그러나' 뒤에 "하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와 자기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진실'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의 결론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십시오. 하나님은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는 이해되지 않고 유익이 없어도 불평이나 원망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결론) '순종'이란 우리 속에서 아무런 고민이나 갈등없이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생각을 '선택'하고 '결정'하여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러나' 뒤에 내 생각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음에 '진리'를 놓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영혼' 중심의 기도를 하십시오. 선택과 결정의 결론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되십시오.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