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3> / (요19:24~27)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말할수 없는 고통 중,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여자'는 최상의 경칭입니다. 육신의 어머니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하시며 부탁하십니다. 그 때 부터 요한이 자기 집에 모시고 섬겼습니다.
1. '사도 요한'은 무조건적인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깊이 '체험'하여 변화된 사람입니다.
사람은 조건적인 사랑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타고난 성격이 과격했지만,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 결과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 '사도 요한'은 '받은 사랑'에 감격하여 '주는 사랑'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은 자의 의무는 사랑을 반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갚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빚에 감사하며 감격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자세' 아닙니까? 제자들은 다 도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했던 사도 요한은 다시 돌아옵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며 십자가로 나아갔을 때, 어머니를 부탁 받았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드린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감격하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올 때, 새벽에 도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인생의 여리고 성, 골리앗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새벽에 무너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조건적인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깊이 '체험'하여 성품이 변화되십시오. 주님께 '받은 사랑'에 감격하여 '나누고 주는 사랑'의 기쁨을 누리십시오. 사랑의 빚진 자로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날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