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을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 ](엡4:29)
믿음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선한 사람이기에 선한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혼을 살리는 선한 말을 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1. 영혼을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쉽게 비판, 판단, 비난, 정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비판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도 똑같은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고 비난할 만큼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판단의 권한은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비난하고 비판하고 싶은 나를 죽이고 용서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정죄하기 보다는 용서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기도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영혼을 죽이는 말이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라면 영혼을 살리는 말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도하는 말입니다.
2. 영혼을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선한 말로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악하고 더러운 말은 듣는 사람에게 독이 됩니다. 상처가 됩니다. 그러나 선하고 진실한 말은 은혜가 되고 공동체에 덕이 됩니다. 선한 말은 덕을 세우고 악한 말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교회에 덕을 끼칠 수도 있고, 교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일평생 하나님만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의 언어를 통해서 백성들을 권면할 때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때, 이것이 덕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고 우리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일요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사명 감당하는 거룩한 ‘주일’입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흥에 겨워 부르는 세상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입니다. 우리는 감정에 춤추며 세상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신령한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보는 구경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쌓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내 영혼이 사는 접촉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려면 마음에 선한 것이 쌓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마음속에 풍성하게 채워지면 영혼에 힘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게 됩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심령 속에 풍성하게 채워지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인 동시에 악한 영이 떠나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서 영육과 환경속에 기대하지 않았던 고난과 시험을 만났을지라도 영혼을 살리는 말을 통해서 내 영혼도 요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영혼도 살리는 하나님의 생명 살림의 역사가 일어나는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의 기도]
1.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는 시대에 용서와 이해, 사랑과 축복으로 영혼을 살리게 하소서!(아멘!)
2. 믿음의 선한 말로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소서!(아멘!)
3.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채워서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