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눅15:21~24>
하나님께는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어머니의 섬세하심이 다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를 인정하고 기대하며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데 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 이루어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은....
1. 사랑하기에 '아낌없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부모가 왜 자식을 이기지 못합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특징은 한 마디로 말하면 '주는 사랑'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요구합니다. 아버지는 무례한 요구에도 아들의 말을 들어줍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내주셨습니다. 하늘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는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은 인생의 고난이 닥치자, 얍복강 가에서 밤새 '기도의 씨름'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고 새 이름을 주십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입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져주신 것입니다. 반면에 '십자가상의 강도입니다. 그는 흉악한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인정함으로 구원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는 회개하면 죄를 사하시고, 진실한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최고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성령'을 주십니다. 곧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성령님의 임재로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까?
2. 사랑하기에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마음입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갔을 때, 아버지는 돌아올 것을 알고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직도 거리가 먼데도 아들을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갑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인간의 회개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더 앞섭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불쌍히 여기고 안아주시는 사랑입니다.
3. 사랑하기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며 기뻐하고 감격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다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깊고 넓은 사랑을 충만하게 체험하십시오. 받은 만큼 사랑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 집에 거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둘째 아들은 집을 떠나보니, 아버지 집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이신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 행복이며 축복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입니다. 가지인 우리는 주님께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 하루 은혜를 공급받아 살수 있습니다.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십니다. 크고 깊고 넓으신 변함없는 사랑을 체험하십시오.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가족과 교회와 성도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