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의 축복 / <고후12:9~10>
사도 바울은 당대의 촉망받는 엘리트 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의 자랑과 지식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기뻐하며, 복음전파의 사명으로 받는 고난과 박해를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반이상을 기록했으며,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가시'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사역에 장애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는 육체의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1. 한계가 있는 '인간'임을 자각하고 인정함으로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를 마귀가 미혹할 때에 그 미끼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유혹에 넘어간 자들이 '이단'들입니다. 이단의 뜻은 처음에는 하나님으로 시작하지만, 그 끝이 다른 것입니다. 그들도 기사와 이적을 행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한다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도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쳤습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 졸음으로 떨어져 죽었을 때에 살려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바울에게 임한 것 입니다. 또한 바울은 '낙원'에 갔다온 사람입니다. 이렇게 신비한 체험을 하고 능력을 행한 바울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육체의 가시'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연약함은 우리가 인간임을 자각하는 '하나님의 처방전'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해서 선을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어부인 베드로를 택하셔서 수천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또한 어린 다윗을 택하셔서 거인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연약한 인간임을 자각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처방전이 되십시오.
2. 전능하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위해 3번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였습니다. 곧 '육체의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낙심하고 인생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억 하십시오! "나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은총의 통로'입니다.
(결론)연약함의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할 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내 안에 머뭅니다. 그러나 내가 강할 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내 안에서 사라집니다. 코로나19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내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만하지 않도록 몸이 연약함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궁핍해지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전도하다가 핍박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사명으로 살면서 어려움 당하는것을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이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보배'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순간,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힘 입어 살게됨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연약함을 자각하십시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삶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복 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