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옷을 지키는 사람 / <계16:15>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불해 가지고 먼 나라에 갑니다. 그리고 허랑방탕하게 그 재산을 허비합니다. 결국 모진 고생 끝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날마다 이 아들은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가장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거지 꼴을 하고 온 아들은 씻기고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킨다'는 의미입니다. 탕자는 자기 옷을 잃어 버렸지만, 아버지는 다시 입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품을 떠난 모든 사람은 '자기 옷을 잃어 버린자'입니다. 자기 옷을 지키는 사람은....
1. 거룩하고 의로운 행실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선을 알면서 행치 않으면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았다면 책임과 의무가 부여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그 아내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십니다.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합니다. 옳은 행실은 '믿음의 행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거룩하고 옳은 행실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믿음과 구원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믿음은 '행위'로 나타납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자기 옷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행동하여 갔습니다.이렇게 믿음이 살아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하여 행동합니다. "믿음과 행동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어떻게 번제로 바칠수 있었습니까? 그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피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바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정욕과 욕심대로 살면 마귀의 자식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초대한 사람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고 내어 쫓습니다. 하늘 나라 잔치에 들어가려면 '어린 양의 피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죄는 우리를 더럽힙니다. 그러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씻으면 희어집니다. 깨끗하게 됩니다. 우리의 공로, 노력, 선행으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옷을 입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자기 옷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옷'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명의 자리, 직분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부라 할 수 있습니까? "깨어 정신차리고 자기 자리를 지키십시오." 무엇이 문제 입니까? 내가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칭찬과 함께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예전처럼 행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의 사명, 직분, 기도가 처음처럼 살아있습니까? 처음보다 떨어졌다면 '옷을 잃어 버린자'가 된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인의 비유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것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성전)을 떠나 여리고(세상)을 내려갈 때에 강도(마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도들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이 '옷을 벗겼습니다'. 자기 옷을 잃어버렸습니다. 피의 옷, 사명의 옷을 잃어 버렸습니다. 교사는 교사의 자리에, 사명자는 사명의 자리에 있어야 자기 옷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구별되어 정결하고 의로운 행실의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의 피의 옷을 입고 새 사람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주신 직분과 사명에 합당한 삶을 통해서 자기자리를 지키심으로 복된 인생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귀한 날! 기쁜 날! 주일을 준비하는 복된 토요일 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