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 ](행16:6-10)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왜(WHY)’가 중요합니까? ‘어떻게(HOW)’가 중요합니까? ‘왜’는 ‘목적’이라면, ‘어떻게’는 ‘방법’입니다. 목적을 알 때, 방법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환난과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처럼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고 싶은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비두니아는 북동쪽인데, 마게도냐는 반대방향인 서쪽입니다. 바울의 뜻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성령님의 뜻은 마게도냐로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마게도냐로 복음을 전하러 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의 수많은 잡음 속에서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어떤 사인을 보내시면 그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놀라운 것을 볼 수 있는 영의 눈도 성령님이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만을 구하고 찾을 때에, 영적 감각이 생기고 성령님에 민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대사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그 갇힌 와중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열매 맺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네시모’입니다.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삶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어떤 선택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심령 안에는 오직 예수님의 DNA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온 인생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복음을 전한 마게도냐 지역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 빌립보 교회가 얼마나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힘 있게 물질과 사랑으로 동역했던 교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지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인생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온 인생의 지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따라가면 반드시 멸망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라가면 반드시 영생합니다.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잡음에 끌려다니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 성령님의 소리에 민감하셔서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대사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고, 앞으로의 남은 인생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지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온 지도를 잘 그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매일 발걸음마다 주님이 인도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의 기도]
1.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주옵소서!(아멘!)
2.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하나님의 대사로서 주님의 향기를 발하게 하소서!(아멘!)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산 지도를 완성하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