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족을 누리는 삶 ](빌4:11-13)
인간의 일생은 “울면서 태어나 불평하며 살다가 실망하며 죽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왜 ‘불평’하며 삽니까? 인생은 일평생 ‘부족함’과 ‘불만족’으로 인해서 불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사도 바울은 ‘만족하며 사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일평생 불평하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1. 만족을 누리는 삶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힘이 되어주시고, 환난 중에 큰 도움이 되어주시니 얼마나 복이 됩니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는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복을 받고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께 피하고,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찾을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부족함입니다. 문제입니다. ‘부족함’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인생의 ‘문제’는 포장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 재료가 무엇입니까? 포도주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벳세대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 오 천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입니까? 먹을 것이 없는 배고픔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의 모든 부족함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계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2. 만족을 누리는 삶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만큼 돈이 위력적인 시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가 피부에 와 닿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 많다고 부족함이 없는 참 만족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삭개오입니다. 영혼의 자리는 결코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영혼의 빈자리입니다. 이 영혼의 빈자리는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만족은 물질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왜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인생은 허무합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처럼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어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인생은 행복합니다. .
결론입니다. 만족을 누리는 삶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은 어떠해야 합니까?“나에게 물질을 주시고 채우시고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내가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내 인생에 물질이 쌓이고 인생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나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 때문에 만족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행복과 만족은 평생 갑니다.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족이 없는 세상 속에서 왕 되시고 주 되신 하나님을 만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참된 만족을 누리며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결단의 기도 ]
1. 인생의 문제와 부족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피하는 복 있는 사람 되게 하소서!(아멘!)
2. 영혼의 빈자리에 오직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 항상 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아멘!)
3.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