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무를 자 ](룻4:9-12)
성경 전체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물론 구약에서도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룻기를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가 되시는데, 룻기의 표현에서 찾아보면 바로 ‘기업 무를 자’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구속한다’(속량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러면 속량은 무엇입니까? “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케 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값을 지불하고 사서 회복시켜 놓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기업 무를 자입니까? 우리의 기업 무를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기업 무를 자는 세 가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1. 기업 무를 자는 ‘가까운 친족’이어야 합니다.
가까운 친족만이 기업 무를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친족인 것처럼 기업 무를 자 예수님은 우리의 친족이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영이신 하나님께서 제한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입으신 이유는 사람들과 같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인 사람들과 같이 되고, 왜 혈육에 속하셔야만 하셨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닌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2. 기업 무를 자는 ‘유력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유력자이십니다.
모든 채무로부터 우리를 능히 자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부채를 갚는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유력한 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3. 기업 무를 자는 ‘자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족이요, 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자원하는 마음이 없으면 기업 무를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보아스는 자원합니다. 책임을 감수합니다. 희생합니다. 보아스는 스스로 룻의 짐을 대신 담당합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인데, 바로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십자가를 지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강요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선택하실 권세도 있으신 동시에 부활하실 권세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결론입니다. 기업 무를 자이신 예수님의 속량으로 ‘자유함’과 ‘회복’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기업 무를 자가 된 보아스가 값을 지불하고 룻을 속량했던 결과가 무엇입니까? 첫째, 속량의 결과로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 속량의 결과로 ‘신분’이 변화됩니다. 셋째, 속량의 결과로 ‘기업’을 잇게 됩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서 인생이 역전됩니다. 좋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우리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고, 마귀 자식에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바꿔주시고, 하늘의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부활 주일에 우리의 죄를 구속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을 소망하며, 하늘의 기업을 잇는 축복이 있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결단의 기도 ]
1.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죄 없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게 하소서!(아멘!)
2. 자원함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아멘!)
3.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참된 자유와 회복을 영원토록 누리고 지키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