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갇힌 자를 향한 약속 ] (요11:38-44)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병든 나사로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갇힌 자를 향한 약속은“내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못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와 문제를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 내 탓입니다.”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남 탓을 하면 내 인생이 불행해 집니다. 욥은 엄청난 환난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원망하는 것은 죄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어리석게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많을까요? 내 인생의 문제가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내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나의 시간과 주님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하심은 내 시간이 아닌 주님의 시간에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늦추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내함으로 통해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게 하시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인생은 내 뜻대로 안 됩니다.”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면 오히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향한 기다림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 갇힌 자를 향한 약속은“현실에 갇혀 있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을 치우라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마르다는 “죽은 지가 4일이나 돼서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납니다.” 하며 주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마르다를 향하여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왜 내 약속을 붙들지 못하고 상황 속에 갇혀 있느냐!” ‘믿음’이란 내가 당하고 있는 현실과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믿는 것 사이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마치 홍해 바다라는 현실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르게 직시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살면 현실주의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를 상실합니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것만 꿈꾸면 현실도피주의자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 갇혀 있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현실주의자인 빌립은 좋은 머리로 재빠르게 계산하고 불가능하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면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은 이렇게 절망적이지만 “혹시 주님 마음속에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시나요?” 이렇게 주님의 다른 계획을 기대하면서 소년의 도시락을 헌신케 한 안드레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기대감을 가지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가져온 안드레와 아이의 믿음대로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5천명이 배불리 먹고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현실과 환경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처럼 좇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결론입니다. 갇힌 자를 향한 약속은“인생의 무거운 돌을 옮겨 놓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되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인생의 비극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결말은 ‘해피 앤딩’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고, 그 하나님을 내가 사랑한다면 우리 인생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각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믿음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돌이 많습니다. 그 무거운 돌이 무엇입니까? 상처와 수치와 의심과 고난과 질병과 가난과 열등감 등등. 이런 것들을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을 옮겨 놓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묶인 자를 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망에 갇혀 있는 나사로도 자유케 하십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그 무거운 돌들을 치우고 주님의 은혜로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