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먼 자를 향한 약속 ] (요9:1-7)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누가 과연 소경인가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9장을 통해서 “본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소경이 정말 본 것이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우리도 소경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요한복음 9장을 통해서 눈 먼 자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에게 영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두 종류의 소경을 발견하게 됩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육신의 눈이 먼 자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두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영적 소경인 바리새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가 아닌 죄인으로 규정합니다. 공부 많이 하고 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영의 눈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세상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영의 눈이 닫힐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이 발견하고 인정할 때에 영의 눈이 열리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잘 난 맛에 살 때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임을 깨달을 때에 영적 눈이 열리는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 지식, 지위와 신분이 영의 눈이 열리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평생 고백하면서 영의 눈이 열리고 주님을 보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모든 질병이 인간의 죄로 인해 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질병이 죄로 인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아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소경이 된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소경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경된 사람과 가정의 수치와 부끄러움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 나라의 4번 타자로 세상에 보내십니다. 우리 열등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꽃 피우는 홈런을 쳐 주시기 바랍니다. 욥이 전 재산을 다 잃고, 자식이 다 죽고, 온 몸에 악창으로 고통을 받을 때, 아내와 친구들마저 비난하고 정죄할 때에 얼마나 수치스럽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의 수치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으며 4번 타자답게 홈런을 확신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과 연약함까지도 주님 손에 붙들림 받으면 정금같이 나오게 되는 하나님의 승리의 결말이 주어집니다.
결론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주님만 바라보며 천국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영적 눈이 닫히면 자꾸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열려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가 신령한 경주를 마치고 천국으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기쁨과 즐거움을 바라보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치를 참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 짓는 현장에 들어갈 때에 주님을 볼 수만 있다면 죄에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가지면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해 버리신다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믿음의 선진들이 박수치며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로 직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영의 눈을 뜨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