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를 취하지 않는 믿음] (약2:1-5)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외모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뻐 보일까? 어떻게 하면 날씬해 보일까? 어떻게 하면 럭셔리하게 보일까? 하는 것이 관심거리입니다. 그래서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말합니다.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내 영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모관리도 잘 해야 하겠지만 영혼관리는 더 잘해야 합니다.
◉ 외모를 취하지 않는 믿음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외모를 보는 사람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더 정확하십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신경을 쓰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에 아무리 겉을 깨끗하게 했을찌라도 속이 더러우면 그것은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안목은 정확합니다. 그래서 이새의 마지막 막내둥이 다윗은 나이는 어렸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영적 거장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최고의 헌금으로 평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의 형편을 다 아셨기 때문입니다.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드리는 사람과 구차한 중에서 전부를 드리는 사람 중 누가 더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까? 사람은 헌금의 액수를 보지만 하나님은 헌금을 드리는 자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외모를 취하지 않는 믿음은 교만하게 판단하지 않고 겸손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 경우가 많고, 판단하는 것은 자칫 교만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하게 판단하는 것 자체가 악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있는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기 쉽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믿음있는 자를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두 경우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오직 주인되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예수님은 판단하지 않고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심지어는 제자들의 발도 씻겨주시면서 이렇게 섬기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제자들도 그렇게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샘플이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외모를 취하지 않는 믿음은 영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보이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전부 실망하고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는 영원합니다. 그래서 영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 많은 부자보다 믿음의 부자가 더 복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자는 돈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믿음에 있어서는 부요하고, 세상에 많은 것을 쌓아 놓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부자보다 믿음이 있는 가난이 장차 가야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욱 값지고 소중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이 보실 때, 믿음의 부자, 천국의 상속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