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안에서 사는 삶 ] (요15: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까? 주님 안에 거할 때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떨어져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잘나고 성공했을지라도 예수님 밖에서 살았다면 생명이 없는 가지! 마지막 날 지옥 불에 던져질 땔감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살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됩니까? 꽃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은 세상이 줄 수 없는‘만족’을 누리는 삶입니다.
인생의 만족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돈에 있습니까? 지식에 있습니까? 권력에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것을 다 가져도 인생은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 가져보니 ‘만족합니다’ 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다 가져 보니 ‘허무하다’고 5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일개 목동에 불과한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기에 부족함이 없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안에 있기에 어떠한 형편에서도 만족하는 삶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만족은 물질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이 만족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만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은 하나님 말씀에‘순종’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순종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비결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75년간을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셔도 순종하고, 할례를 행하라고 해도 순종하고, 100세에 낳아서 17년 가까이 키운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고 해도 순종하였습니다. 그렇게 순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준행하는 사람은 하늘의 복을 받고, 그 복이 자손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순종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 자손까지 복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삶은 우리의 환경과 형편과 상황을 초월해서 드려져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이 좋을 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남방으로 옮겨 가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의 단을 쌓는 예배자였습니다. 먹고 살 수 없어서 남방으로 옮겨가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하고 경배하는 삶이 예수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결론입니다.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은 아름답고 풍성한‘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열매로 우리의 믿음을 평가하십니다. 나무의 존재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도 아무 열매나 다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물가에 심기운 나무입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린 사람입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만족하며, 순종하며, 예배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