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 <눅15:11~24>
오늘 '탕자의 비유'는 다른 관점으로 보면 집을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변함없이 기다린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그 아들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 은혜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1.'구하는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유산을 가불해 달라는 아들의 무례한 요구를 들어 줍니다. 사랑하기 때문 입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요, 은혜 인줄 몰랐습니다.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그 재산을 허비했습니다. 여기서 '허랑방탕'의 뜻은 '무절제' '방종' '타락'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이 자유가 아니라 방종 인줄 몰랐습니다. 즐거움이 아니라 타락이었습니다.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특징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최고의 좋은 것을 약속하십니다. 성령님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곧 성령님(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응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범죄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 즉시 나옴으로 그 관계가 회복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에서 나간 그 순간 '생각하고' 굉장히 오랜시간 기다렸습니다. 아직 거리가 먼데도 그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왜요?측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도 삭개오를 만나시고자 여리고로 찾아 가십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삭개오와 그의 집을 구원해 주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천하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긍휼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3. '변하지 않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죽은 자식이 살아남과 같은 감격과 다시 찾은 감격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부인하고, 의심하고, 팔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그러기에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오죽하면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은 단 둘이 있을 때에,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조건없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기에, 내가 깨닫고 경험한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구하는 것을 주시며,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변하지 않는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 하십시오! 그래서 그 마음을 알고, 나도 이제는 하나님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